☎ 손석희 / 진행 :

2010년에 부도처리 됐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쌈지를 기억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또 인사동의 명물로 자리 잡은 쌈지길도 있고요. 한국토종캐릭터로 오랜 사랑을 받고 있는 딸기가 좋다 등등해서 대표적인 이 토종브랜드 쌈지가 남긴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튼 쌈지는 이제는 없어졌고요. 쌈지의 전 대표이신 천호균 대표는 쌈지농부로 변신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농촌과 도시 소비자를 이어주는 일에 매진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잘 나가던 패션업체 대표가 농부가 되셨으니까 그것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하고 또 당사자께서도 하시고 싶은 말씀도 많이 있을 것 같아서 오늘날 <토요일에 만난 사람>으로 쌈지농부 천호균 대표를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 천호균 :

안녕하세요. 천호균입니다.

☎ 손석희 / 진행 :

예, 헤이리에 사신다고요. 파주.

☎ 천호균 :

한 6, 7년 됐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이 시간에는 거기서 오실 때 얼마 시간이 안 걸릴 것 같습니다.

☎ 천호균 :

오늘 한 30분 걸렸나요.

☎ 손석희 / 진행 :

얼마 안 걸리네요. 진짜. 가기 전에 출판지도 있고요.

☎ 천호균 :

네, 맞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주말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헤이리는 요즘 번거로워지진 않았습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 천호균 :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번거롭기보다는 뭐 헤이리가 많은 사람들한테 굉장히 즐거운 것을 보여줘야 되겠다는 이런 급박한 생각이 들고 바빠지죠. 하여튼 생각보다는 내용에 비해서 많은 사람들이 많은 걸 기대하고 헤이리를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긴 헤어스타일은 원래 그러십니까?

☎ 천호균 :

지금은 사실 이발한지 얼마 안 돼가지고 굉장히 짧은 상태인데 길다고 그러니까 손석희님에 비해서 긴 것 아닌가요?

☎ 손석희 / 진행 :

더 길게, 그럼 원래부터 그렇게,

☎ 천호균 :

대학교 때부터 이러고,

☎ 손석희 / 진행 :

그러십니까?

☎ 천호균 :

거의 머리는 누가 보기에 어쩜 이렇게 기가 막히게 똑같은 이런 스타일을 하고 있냐고 그러는데

☎ 손석희 / 진행 :

저한테도 사람들이 그러긴 합니다.

☎ 천호균 :

사실은 저는 꽤 신경 써서 이런 스타일을 하고 있는데요.

☎ 손석희 / 진행 :

더 짧거나 하면 불편하십니까?

☎ 천호균 :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아서 머리가 긴 건 시간이 이렇게 자기를 가꾸는 것 중에서 제일 티가 나는 게 머리 부분인데 그걸 또 새롭게 깎는 게 저는 뭔가 제가 제 거울을 볼 때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아서,

☎ 손석희 / 진행 :

그런데 대학시절부터 그러셨다고요?

☎ 천호균 :

대학교 때는 그때 마침 유행이었고 우리 대학교 다닐 때는,

☎ 손석희 / 진행 :

물론 그랬었는데요.

☎ 천호균 :

유행의 첨단인. 요즘은 유행에 뒤진 머리 긴 스타일로 그냥.

☎ 손석희 / 진행 :

대학 때시면 70년대 초반인데요.

☎ 천호균 :

그렇죠.

☎ 손석희 / 진행 :

그 후부터 몇 년 동안은 장발단속도 많이 했는데

☎ 천호균 :

저는 눈치가 빨라 가지고 단속은 웬만하면 안 걸렸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그때도 말이죠. 모처럼 기른 학생들은 가서 잡혀서 머리 깎이고 원래 길고 있던 사람들은 잘 안 잡히더라고요.

☎ 천호균 :

그리고 제가 몇 번 그럴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시인이라고 제가 그러고 다녔어요. 그러면 그 당시 경찰들도 시를 쓰거나 창의적인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크게 좀 존경하면서 보는 눈치이기 때문에 단속을 많이 안 하더라고요.

☎ 손석희 / 진행 :

아, 예. 그걸 좀 배웠으면 그때 저는 종로에서 한번 걸려가지고요. 뭐하냐고 해서 재수생이라고 그랬더니 바로 잡아가서 머리를 깎더군요.

☎ 천호균 :

손석희님도 머리를 긴 적이 있었네요.

☎ 손석희 / 진행 :

지금도 아주 짧진 않은데 아무튼, 지금 기르신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귀는 덮었었거든요. 귀 덮으면 잡혀갔거든요. 그때는. 약력을 잠깐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49년에 서울에서 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나이로는 예순넷이 되셨군요.

☎ 천호균 :

49년생이니까 마흔아홉 아닌가요?

☎ 손석희 / 진행 :

그렇게 계산하십니까? 알겠습니다. 경기고등학교를 나오셨습니다. 그때는 제일 좋은 학교, 지금도 좋은 학교라고 합니다만 제일 좋은 학교입니다. 그러면 49년 경기고 49년생이고 경기고시면 제가 대략 한 초등학교 2, 3학년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는 얘기신데요.

☎ 천호균 :

나이를 몰랐는데 대충 제가, 나이가 꽤 되셨네요. 우리 손석희님도.

☎ 손석희 / 진행 :

그때 제가 이 시간에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던 것 같은데 저희 동네에서 저 초등학교 2, 3학년 때 저 야구 가르쳐준 형들이 경기고등학교 1학년생들이었거든요.

☎ 천호균 :

그렇구나.

☎ 손석희 / 진행 :

동기분들인 것 같습니다.

☎ 천호균 :

아마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때 저희 고등학교가 야구를 꽤 잘했었는데.

☎ 손석희 / 진행 :

에이, 그런 적은 없습니다.

☎ 천호균 :

그중, 그때가 제일

☎ 손석희 / 진행 :

오랜 역사속에 그때 잠깐 잘하셨다 이거죠.

☎ 천호균 :

잠깐.

☎ 손석희 / 진행 :

그래서 그때 그 형들이 골목에서 그렇게 야구를 열심히 했군요, 공 주고받기를.

☎ 천호균 :

아마 그랬을 것 같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지나가던 초등학교 2, 3학년인 저를 붙잡아 놓고 니가 캐처를 해라, 그러더니 공받기 좀 가르쳐 주더니 한 사람은 야구 배트를 들고 저는 캐처를 들고 한 사람은 투구가 돼서 공을 던져서 제가 그 공에 많이 맞았습니다. 동기 분이신 것 같습니다.

☎ 천호균 :

이름을 기억 못하시겠죠?

☎ 손석희 / 진행 :

못하죠. 못합니다. 몇 년 만에 그 동기 분을 만나는 군요.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하셨습니다. 1차에서 떨어지셨군요.

☎ 천호균 :

네, 떨어졌죠.

☎ 손석희 / 진행 :

그때는 2차였으니까요. 성균관대가. 왜 영문과를 가셨습니까?

☎ 천호균 :

영문과과 그 당시에는 제가 문학을 하고 그런 것보다는 기본적으로 영어를 하면 취직하기가 쉽겠지 하고 그냥 영문과를 선택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과를 모르고 가신 분도 계시더라고요. 지지난주인가 나오셨던 김창완씨께서는 그냥 가라고 해서 갔지 그 과가 뭐하는지 모르고 갔다, 그래도 끝까지 졸업은 하셨더라고요. 대우중공업에 잠시 계시다가 나와서, 역시 취업은 그래서 하셨군요. 대우중공업에.

☎ 천호균 :

취업을, 그 당시 대우가 직장이 좋은 직장으로 소문나 있어가지고 제가 대우에 들어가니까 사람들이 그 당시 학교에서 아주 놀랐어요. 저런 친구가 성적도 시원찮은데 들어갔다고.

☎ 손석희 / 진행 :

성균관대에서 학점이 안 좋으셨던 모양이군요.

☎ 천호균 :

학점이 아주 안 좋진 않았는데 그 당시에는 수석하고 그런 친구들만 아마 대우에 들어 갔던 모양이에요.

☎ 손석희 / 진행 :

그 정도로 셌던가요?

☎ 천호균 :

김우중 회장님이 저를 기억하시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 회장님도 저를 인터뷰할 때 별로 느낌이 안 좋았었는데 하여간 나중에 보니까 결과적으로.

☎ 손석희 / 진행 :

결과적으로 느낌이 안 좋은 대로 하신 것 아닙니까? 그만두셨으니까.

☎ 천호균 :

그런가요. (웃음)

☎ 손석희 / 진행 :

기억 하실 것 같은데요. 그때도 머리가 지금 상황이셨을 것 아닙니까?

☎ 천호균 :

직장 다닐 때도 아마 지금 하고 똑같고 아마도 면접한 사람 중에는 꽤 그냥 꾸미지 않고 왔구나 하는 그런 인상을 받으신 것 아닌가 생각이 들고

☎ 손석희 / 진행 :

그러다가 1981년에 호박상사를 경영하셨다고 돼 있는데요. 호박상사는 어떤 곳입니까?

☎ 천호균 :

제 별명이 중고등학교 때 호박이라고 둥글둥글 하고

☎ 손석희 / 진행 :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 천호균 :

무난하고 무던하고 잘 웃고 호박은 그 당시 잘 못생긴 걸 상징할 때 호박이라고 그랬는데 호박이라는 별명이 꽤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별명대로 이렇게

☎ 손석희 / 진행 :

흔히 얘기하는 소박상사는 오퍼상을 얘기하는 건가요?

☎ 천호균 :

오퍼상을 했죠. 그 당시 가죽 수입 수출하는 오퍼상을 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그래서 그게 쌈지의 모태가 되는 거군요.

☎ 천호균 :

결국 쌈지 전의 회사가 됐죠.

☎ 손석희 / 진행 :

1993년에 ‘핸드백을 입자’ 라는 슬로건을 좀 독특했습니다. 그래서 쌈지를 탄생시키셨는데, 쌈지는요. 지금도 물론 많은 분들이 기억하십니다만 제가 97년에 미국 가서 2년 후에 돌아왔는데 그 2년 동안 제가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고 다녔던 책가방 이름이 쌈지입니다.

☎ 천호균 :

그래요. 그 당시 멋쟁이들은 다 들었는데,

☎ 손석희 / 진행 :

어디서 얻었습니다. 제가 백으로 가방으로 멋 낼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래서 얻었는데 뚜껑을 열게 돼 있고요. 거기에 책이 꽤 들어가기도 하고 들고 다니면 아주 멋있더라고요. 그래서 쌈지라고 커다랗게 써있고 미국 사람들이 저한테 이게 어디 메이커냐 해서 한국 꺼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해서 그냥 그런 게 있다 하고 넘어갔는데 왜 쌈지라고 지으셨습니까?

☎ 천호균 :

쌈지란 말이 어떻게 보면 우리 말 중에서 그 당시만 해도 숨어 있던 말이죠. 삼 흔히 쓰지 않는. 굉장히 따뜻한 표현이고 어떻게 보면 어른들서부터 굉장히 참 차곡차곡 모으고 그 모은 것을 또 자기 자녀들한테 물려주고 하는 어떤 전통적인 따뜻한 용어이기 때문에 또 마침 무슨 브랜드를 만들까 한참 고민을 하다가 저희 집사람이 쌈지란 말을 탁 꺼냈는데 그 당시 제가 느낌이 이게 제가 할 브랜드구나 해서 바로 상표등록을 했고 그때부터 쌈지라는 뜻대로 좀 우리 정서를 많이 담자 핸드백에, 하고 그런 디자인을 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정말 물려주면서 쓸 수 있는 좋은 제품이더라고요. 하여간 덕분에 잘 썼습니다.

☎ 천호균 :

선물한 사람이 멋쟁이였던 것 같아요. 남자였나요. 여자였나요.

☎ 손석희 / 진행 :

그건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여자 분이 저한테 그걸 줄 리는 없는 것 같고 어디서 얻었겠죠. 쌈지길을 만드셨습니다. 쌈지길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걸까요. 인사동에.

☎ 천호균 :

제가 쌈지를 시작하고 나서 쌈지디자인의 영원한 테마는 예술입니다, 이런 멋있는 말을 가지고 소비자와 소통을 하자 하고 약속했죠. 그 약속을 계속 지키다 보니까 쌈지라는 회사는 예술을 많이 사랑하는 아주 창의적인 회사구나, 그런 브랜드구나 하고 사람들이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계속 찾다 보니까 그 골목길의 아름다움, 그 인사동에 있는 아름다움이 제대로 된 아름다움 같더라고요. 그래서 마침 그 당시 쌈지라는 이름을 걸고 어떤 유통을 할까 고민하고 그 장소가 어디가 어울릴까 생각하다가

☎ 손석희 / 진행 :

인사동이었군요.

☎ 천호균 :

홍대는 아주 실험적인 곳이었고 당시에, 대학로는 문화적인 동네였다면 그래도 우리 문화, 우리 역사가 많이 남아 있는 인사동이 쌈지하고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해서 인사동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골목길을 더 만들자 해서 올라가는 길, 쌈지길이라는 건물을 그 당시 시작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거기서 인디밴드도 많이 발굴하셨다면서요.

☎ 천호균 :

쌈지란 회사를 할 때 늘 새로운 예술문화를 접하다 보니까 소외된 당시에 새로운 음악을 하는 그런 밴드들하고 같이 우리 대중들, 우리 고객들하고 소통하는 공연의 장을 시작했죠.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이라고 거의 10여년동안 지속됐죠.

☎ 손석희 / 진행 :

지금은 안 하고요?

☎ 천호균 :

작년까지 했으니까

☎ 손석희 / 진행 :

올해 할 수도 있겠군요.

☎ 천호균 :

올해도 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 손석희 / 진행 :

그러면 쌈지는 좌우지간 2009년에 매각하시고 지금은 부도 처리가 돼가지고 없어졌는데, 왜 매각을 하셨습니까? 장사가 잘 안 되셨습니까?

☎ 천호균 :

제가 할 수 있는 정도가 그 수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 2009년 마침 제가 한 1년 전서부터 회사에 집중했던 쌈지농부란 그 조직이

☎ 손석희 / 진행 :

쌈지농부는 훨씬 전부터 그럼 시작됐던 거군요.

☎ 천호균 :

쌈지매각 1, 2년 전부터 농부라는 농사라는 그런 새로운 장르의 예술을 가지고 고객들하고 소통하자 해서 쌈지농부팀을 만들었죠. 그래서 장사는 쌈지는 젊고 유능한 사람들한테 이제 넘기고 저는 쌈지농부나 아니면 그동안 쌈지가 진행해왔던 예술분야의 그런 걸 가지고 앞으로 일을 하는 게 내 능력에 적합한 것 아닌가 해서 회사 매각을 결정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그래서 2010년에는 파주 헤이리에 생태가게 지렁이다, 이게 제목입니다. 지렁이다, 생태문화공간, 논밭예술학교, 또 오가닉 튼튼밥상, 이건 유기농 식당인 것 같습니다. 이걸 여셨고 같은 해에 다시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쌈지가 부도나 났고요. 2011년에, 그러니까 작년에 흙살림과 손을 잡고 농산물 유통매장을 만드셨습니다. 농산물 유통매장 이름이 굉장히 괜찮습니다. ‘농부로부터’ 이렇게 되네요. 그리고 파주 헤이리하고 출판단지 서울서 가다 보면 출판단지가 좀더 가깝습니다만 한남동에도 여셨습니다. 농부로부터를. 잘 됩니까? 이 농산물 유통매장이요.

☎ 천호균 :

농산물 유통매장이 잘 된다는 개념이 매출이 많고 이익이 나고 그런 쪽으로 잘 된다고 보면 좀 제가 얘기하기가 자신 없고 생활예술영역으로 이런 먹거리들이 유통될 수 있구지나, 그 먹거리 매장이 테마가 있는, 예를 들어서 토종 씨앗으로 만든 이런 농산물을 못생겨도 좋아, 생긴 대로 있는 이런 농부들이 잘 팔기 어려운 소비자들이 공산품처럼 규격된 모양 좋은 그런 먹거리들만 먹다 보니까 그렇게 팔기 어려운 생긴대로를 파는 그 다음에 이왕이면 우리 음식 중에서 제일 그 자랑할 수 있는 그 발효음식을 파는 테마를 가지고 예술문화와 결합된 먹거리, 슈퍼, 매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다 유기농일 것 아닙니까?

☎ 천호균 :

친환경 플러스 유기농,

☎ 손석희 / 진행 :

그러면 좀 비싸지 않나요?

☎ 천호균 :

유기농이 비싸다는 인식은 아마 잘 모르는 사람들의 유언비어인 것 같고요. 유기농을 하는 취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당히 의식이 있다보니까 그리고 대부분 어떤 생협, 소비자와 생산자의 조합식으로 운영해서 중간유통마진이 거의 대부분 없죠. 그러다 보니까 기존에 뭐 수입되거나 이런 농산물하고 비교하긴 뭐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일반적인 그 먹거리하고는 거의 가격이 크게 차이가 안 나는 걸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그런가요?

☎ 천호균 :

이게 아마 정확히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고 제 조사라는 가격이 비싸다는 건 약간 오해인 것 같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오해가 있을 수도 있다. 또 방송 듣는 분들 가운데는 아니야, 내가 갔더니 정말 비싸더라,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 천호균 :

부분적으로 비싼 건 있을 수 있겠죠.

☎ 손석희 / 진행 :

그렇겠죠.

☎ 천호균 :

시기에 따라서.

☎ 손석희 / 진행 :

상 받으신 것도 말씀드릴까요? 97년에 한국섬유대상 패션경영부문을 수상하셨습니다. 마케팅 환경마케팅 대회에서 디자인상도 받으셨고 대한민국 브랜드 경영대상, 큰 상을 받으셨고요. 패션협회 패션경영인상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약력 소개를 이 정도로 마무리할 텐데요. 내용을 보면 예를 들어서 서울에서 나셨고 대우중공업에 다니셨고 또 쌈지라는 디자인 패션디자인을 하셨고 그러면 농사일에는 왜 관심을 가지셨습니까? 처음에.

☎ 천호균 :

이제 제가 무슨 그동안 했던 일들이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했던 일은 거의 없었고 하다 보니까 우연이 인연이 됐고 그 인연이 될 때마다 어떻게 저하고 잘 어울리는 처음에 시작한 이야기, 생각들을 계속 약속을 지켜나가고 하면서 그 일을 계속 꾸려 나갔죠 그러다가 마침 쌈지일이라는 게 아름다움을 찾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숨어 있는 소외된 아름다움을 찾는 게 그리고 그걸 가지고 예술로 표현하는 그런 일을 쭉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농사가 진짜 가치 있는 아름다움이구나 해서 농사의 어떤 생명력에 듬뿍 빠졌습니다. 그래서 아까 얘기했듯이 쌈지농부팀을 만들었고 그래서 농사공부를 시작했죠.

☎ 손석희 / 진행 :

그게 대개 연배로 보시면 50대 초반?

☎ 천호균 :

농사 시작한 게 50대 후반.

☎ 손석희 / 진행 :

중후반. 그때쯤 되면 사실 도시에서 난 사람들도 농사일에 대해서 조금씩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실제로 또 빠지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 해서 귀향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아마 그런 많은 분들 중에 한분이었을 텐데 그것을 직접 매우 본격적으로 실천하는 분이신 것 같습니다.

☎ 천호균 :

사람이 대한민국이 농경국가였으니까 DNA가 그런 게 숨어있다가 흙을 조금이라도 만지게 되면 그런 옛날 감성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경험을 실제로 하고 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그때 그러면 농사를 처음으로 배우셨다는 얘깁니까? 50대 후반 되셨을 때.

☎ 천호균 :

저는 아마 씨를 뿌리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광경을 처음으로 주목했던 게 그 당시였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그런데 그 농사일이라는 것이 쉬운 건 아닐 텐데요. 대개 흔히 얘기하길 이제 뭐 은퇴하면 가서 농사나 지을까라고 농사‘나’를 붙이는 바람에 욕을 많이 먹는데, 어떻게 배우셨습니까?

☎ 천호균 :

돈을 버는 농사를 하려면 굉장히 부지런하고 바빠야 되고 경우에 따라선 그 재미를 모르면 힘들겠지만 이게 농사를 배우는 저 입장에서는 거의 경이로움이죠. 그리고 이제 흙을 만지면서 야, 내가 여태까지 흙이라는 걸 어떻게 생각을 귀중한 모든 숨쉬는 것들의 어떤 터라는 것을 처음 느끼죠. 그래서 이게 여태까지 조금 제가 일찍 이런 생명의 신비를 알았으면 그동안 산 게 얼마나 좀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하는 반성도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걸 알 기회가 됐으니까 굉장한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 손석희 / 진행 :

그래서 쌈지농부의 홈페이지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제가 아까 잠깐 얘기해드렸습니다만 ‘농사가 예술이다’ 이런 나름대로의 철학을 피력하신 바가 있습니다. 지금 하신 말씀으로 가름할까요? 농사가 예술이라는 설명.

☎ 천호균 :

예술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 나름대로 예술이라는 게 올바른 것을 아름다운 감각으로 표현하고 그 아름다움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자 예술가들이 고뇌하고 목숨 거는 그런 걸로 예술을 이해했다면 농사자체가 그런 관점에서는 무지 나누는 것에 굉장히 초점이 갖춰져 있죠. 혹시 콩 세 알 이라는 얘기 들어보셨죠. 농부의 마음을 거의 대변하는데 콩 세 알을 심으면서 한 알은 땅 속에 있는 벌레들한테, 그 다음에 한 알은 하늘 위에 있는 곤충들이나 새들한테. 그리고 이제 한 알을 사람과 이웃이 나눠먹는 그런 농부의 마음이 예술가들의 그 아름다움을 나누는 것과 너무나 흡사한 마음이더라고요. 농사가 예술이다 하는 건 어떤 무슨 유행이 아니라 그냥 뭐 어떻든 진실, 이런 문화운동을 쌈지농부가 펼쳐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농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이 더욱더 듭니다.

☎ 손석희 / 진행 :

몇 년 안 됐는데요. 그래서 방송 듣고 계신 분들 가운데에는 이분의 농사 실력을 믿어도 되는 거야, 이렇게 생각을 (웃음)

☎ 천호균 :

농사실력을 실력 내기를 하면 모르지만 지금 같이 비가 오래 안 오면 제 몸이 마치 그 대지에 있는 풀이나 어떤 나무처럼 아주 목말라 있고 하는 어떤 대지와 같이 호흡하는 그 정도의 심정이 있으니까 아마 비가 오면 제가 마치 아주 시원한 샤워를 하는 것처럼 나무들이 그런 기쁨을 느낄 것 같아서 그 정도면 농부의 마음에 가까이 가지 않았나 하는

☎ 손석희 / 진행 :

그 진정성이라는 것이 전해져오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큰일이네요. 이렇게 비고 안 와서.

☎ 천호균 :

제가 일과 중에 요즘 물주는 일이 바쁜데 그래서 물을 열심히 주다가 이렇게 수돗물을 막 낭비해도 되느냐 라는 그런 생각이 들면서 이거 우물을 좀 많이 받아야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 마침 엊그저께 시청 앞에서 농사박람회

☎ 손석희 / 진행 :

있었습니다.

☎ 천호균 :

거기 어떤 분이 이 우물 받는 걸 간편하게 개발해왔더라고요. 그래서 그것을 곧 주문을 한번 하려고 합니다.

☎ 손석희 / 진행 :

뭐뭐를 작물을 하십니까?

☎ 천호균 :

농부 두 분이 저희 회사에 취직해 있죠. 한 분은 75세, 한 분은 82세, 너무나 이 일이 능수능란하고 오랜 경험이죠. 그래서

☎ 손석희 / 진행 :

그분들을 믿으면 될 것 같습니다.

☎ 천호균 :

농부가 꼭 기운으로 하는 것보다는 어떤 지혜로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분들한테 열심히 배우고 콩 심고 거의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오이, 호박, 그리고 최근에는 조그맣게 쌀농사까지 조금 경험삼아 시작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그런데 대개 규모의 경제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농사도 사실상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 거기서 수익이 나오고 그럴 텐데 규모는 꽤 됩니까? 어떻습니까? 두 분이 하신다니까.

☎ 천호균 :

저희 규모는 그냥 농사를 배우는 직원들이, 그 농사의 어려움이나 수고를 이제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 농사를 짓는 거고 실제로는 수많은 그 소농들, 그 다음에 그 거래하기가 좀 어려운 그런 분들을 찾아서 도시, 또는 젊은이들한테 소개하고 그들의 농산물을 유통하고 그런 일이 저희가 할 일이죠.

☎ 손석희 / 진행 :

그 농촌하고 도시 소비자를 이어드린다고 제가 아까 몇 번 소개를 해드렸는데 어떤 식으로 이어 주십니까?

☎ 천호균 :

최근 6월 2일 날 도시농부시장에서 ‘맛있게 먹겠습니다’ 라는 그 장터가 서울 광화문 열린마당에서 시작됐죠. 그래서 매주 토요일 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 시장이 열립니다. 그래서

☎ 손석희 / 진행 :

거기는 그러면 전국에서 누구든 농부 분들이 올라오셔서 장을 열 수 있다라는얘긴가요?

☎ 천호균 :

거의 지금 전국 지자체에서 그 농사를 나름대로 잘 짓는 분들이 직접 올라 오셔 가지고 자기 이름, 자기 얼굴 걸고 농산물을 팔고

☎ 손석희 / 진행 :

경쟁이 좀 있겠는데요. 장소가 제한이 있기 때문에 .

☎ 천호균 :

경쟁이 지자체에서 오는 농부들은 제가 경쟁은 잘 모르겠고 아마 서울시가 잘 선별해서 판단하는 것 같고 서울 근교에 있는 도시농부들, 그분들은 저희가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는데 꽤 생각보다도 서울에 젊은 농부들이 많이 있고

☎ 손석희 / 진행 :

그런가요?

☎ 천호균 :

그 다음에 나름대로 호주에 유학까지 갔다 온 농사유학까지 갔다온 분도 계시고 해서 우리 젊은 농부 그 리스트 보면 상당히 재미있고 여러분들도 우리 쌈지농부 도시농부 ‘맛있게 먹겠습니다’ 인터넷 보시면 농부들이 이렇게 다양하게 농사에 대한 그 시작을 했구나 하는 걸 느끼고,

☎ 손석희 / 진행 :

쌈지농부에서 전국에 특히 서울근교가 많겠습니다만 농부들을 쌈지농부를 이렇게 끌어들이셔서 그분들을 도시 소비자들하고 이어주는 하나의 터가 농부의 시장, 도시농부 거기군요.

☎ 천호균 :

‘맛있게 먹겠습니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저희가 주관하는 기획하는

☎ 손석희 / 진행 :

그래서 서울 농부의 시장, ‘맛있게 먹겠습니다’. 제가 잠깐 아까 말씀드린 쌈지가방 들고 다니던 곳이 미국의 미네소타 라는 곳인데요. 거기 미니애폴리스라고 꽤 아름다운 도시가 있습니다. 고층빌딩도 굉장히 많고요. 거기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요일을 정해서 파머스마켓이라고 해서 그 근처에 있는 농부들이 전부 끌고 올라와서 우리로 치면 대학로 정도 되나요. 차량 통제가 되는 기다란 길이 있는데 거기에 하루 종일 쭉 천막 쳐놓고 하는데 아주 아름답더라고요. 그러니까 농산물을 사는 것, 안 사는 것을 떠나서 굉장히 현대적인 도시 속에 농부 분들이 올라가서 쭉 펼쳐놓고 리어카든 뭐든 다 가져와서 하시는데 풍경도 보기가 좋고 또 거기 사람들은 그 요일만 되면 열심히 와서 농산물도 사 가고 아마 그런 것을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 천호균 :

그게 몇 년 전인가요?

☎ 손석희 / 진행 :

오래 됐습니다. 한 15년 됐습니다.

☎ 천호균 :

외국 경우는 그런 도시가 특히 도시의 중심부가 농사, 농부들을 초대해서 이런 시민들하고 소통하는 행사들을 많이 하죠.

☎ 손석희 / 진행 :

많이 하죠.

☎ 천호균 :

그게 단순히 많이 팔고 싸게 사고 그런 것보다도 도심에 이제 그 도심이 잃어버린 어떤 농사, 농부 이런 것들을

☎ 손석희 / 진행 :

관심도 더 높이고요.

☎ 천호균 :

그리고 어떤 생명이나 이런 것에 대한 인식, 해서 생활 패러다임을 바꾸는

☎ 손석희 / 진행 :

대개 또 그분들이 규모가 작기 때문에 유기농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 천호균 :

그럴 겁니다. 도시민들이 그만큼 관심도 갖게 되고,

☎ 손석희 / 진행 :

쌈지농부의 천호균 대표님과 지금 얘기 나누고 있는데 어느 사이에 또 광고 나갈 시간이 됐습니다. 잠깐 광고 듣고 말씀마저 나누겠습니다.

<토요일에 만난 사람> 쌈지농부의 대표이신 천호균 대표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쌈지란 기업, 이제 부도나서 문을 닫았으니까 어찌 보면 기억하기 싫은 부분도 분명히 있으실 텐데 왜 쌈지농부에는 여전히 쌈지란 제목을 달고 계실까요?

☎ 천호균 :

쌈지를 매각할 때 약속이 쌈지농부는 제가 운영하는 걸로 약속을 했고 그 다음에 지금 기억하기가 뭐 어떤 운명 같은 얘긴데 회사가 없어진 게 제가 아닌 남에 의해서 없어졌고 그런 게 만약 없고 쌈지가 잘 나갔다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쌈지농부에 특히 농사가 예술이다 라는 이런 문화적인 개념들이 그만큼 진솔하고 절실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어느 농부가 저를 위로하길 보리가 추운 겨울을 넘겨야지만 제대로 익는다고, 춥지 않으면 쭉정이가 된다고. 네가 아마 크게 되기 위해서 이런 시련을 겪는 것 아니냐 라는 얘기를 하는데 하여튼 그런 희망을 갖고 요즘 생활하고 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물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쌈지가 문을 닫은 것은 천호균 대표가 문을 닫은 것은 아니나 문 닫기 1년 전에 떠나셨으니까요. 그런데 그 전에 예를 들면 영화투자도 하신 바가 <무방비도시>, 다 이렇게 크게 히트하지 않은 영화로 알고 있습니다.

☎ 천호균 :

영화하고 인연은 그것도 굉장한 인연이고 그전까지는 모든 저하고 관계되는 저와 같이 했던 파트너들이 저한테 굉장히 큰 재정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도움을 줬는데 영화의 인연은 제가 마침 저희가 문화예술하고 가까이 하는 회사니까 문화산업을 한번 하자고 영화사를 인수했죠. 그 당시 아이비전이라는 회사를. 그리고 철저하게 아이비전 회사에 운영을 맡겼는데 아마 그만큼 창의적인 영화를 저희가 많이 할 만큼 여력이 안 되고 어떤 욕망만 있어서 영화를 시작한 것 같고.

☎ 손석희 / 진행 :

그 이외에도 화장품, 출판, 너무 이렇게 이른바 사세확장을 하신 바람에 결국은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은 안 받으셨는지요?

☎ 천호균 :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겠죠. 화장품 사실 출판은 저는 한 적이 없고 아마 새로운 경영자들이 그런 기업발표를 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런 부분은 아니었고 아까 말한 영화계통, 하여간 제가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지만

☎ 손석희 / 진행 :

죄송합니다. 아픈 기억을 자꾸 말씀드려서.

☎ 천호균 :

아닙니다.

☎ 손석희 / 진행 :

다시 농부로부터 다시 사업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요즘 전혀 안 하십니까?

☎ 천호균 :

사업이란 게 이제 지금 여태까지는 이익이 나고 하는 사업들만 익숙하다가 어떤 가치를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그 가치를 가지고 투자를 생각하고 그 다음에 소비자들이 그것에 대한 가치에 같이 호응함으로써 소비하는 가치소비를 하는 그런 소비자들이 점점 늘고 함으로써 지금 쌈지농부란 게 어떤 단순한 운동이나 뭐 NGO들이 하는 그런 시민문화, 시민운동을 벗어나서 사업적으로도 가능하지 않겠냐 하는 생각을 하고 저는 어차피 사업을 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식품 먹거리 쪽에 유기농을 중심으로 가치를 먼저 그 다음에 사업이 되는 그런 시범을 보였으면 하는 희망을 합니다.

☎ 손석희 / 진행 :

사업가 마인드를 완전히 버릴 순 없다, 그런 말씀.

☎ 천호균 :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아까 대학시절에 학점은 별로 아니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도 혹시, 요즘 보면 대학생들부터가 사업가 마인드를 가지고 학교 다닐 때부터 돈 벌고 그런 학생들도 꽤 있었던 것 같은데 원조격에 속하진 않으시는지요, 혹시?

☎ 천호균 :

그 당시 집안도 넉넉하지 않고 학교 다니려면 제가 벌어야 되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실력이 있어가지고 애들 과외공부도 하기 어렵고 생각한 게 장사가 또 그 당시 마침 연애도 열심히 하고 있어서 월급 안 주는 직원도 한 명 옆에 따라다니고 해 가지고 장사하는 게 어떨까 생각했고 실제로 장사하는 게 공부보다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장사를 대학교댜닐 때 공부 이상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어떤 장사를 하셨습니까?

☎ 천호균 :

제가 기원도 한번 했고 카페도 한번 했고

☎ 손석희 / 진행 :

바둑 두는 기원이요?

☎ 천호균 :

예, 바둑 두는. 제가 바둑 잘 안 두지만 바둑이란 공간이 뭐 꼭 바둑을 두는 것보다는 차도 마시고 그 다음에

☎ 손석희 / 진행 :

물론 그렇죠. 사교의 공간이죠.

☎ 천호균 :

책도 보고 사교의 공간으로 굉장히 좋기 때문에 카페 기원을 열었고

☎ 손석희 / 진행 :

형편이 어려우셨다는데 그거 열 돈은 어디서 나셨을까요.

☎ 천호균 :

그 당시 저희 식구들이 많아 가지고 식구들이 저를 굉장히 신뢰한다고 돈들을 조금씩 많이 꿔줬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이 친구는 사업가 기질이 있으니까 분명히 손해는 안 볼 것이다.

☎ 천호균 :

제가 꾼 돈을 잘 갚아서 그런지 그래서 꿔가지고 이런 장사들을 하고

☎ 손석희 / 진행 :

다 남기셨습니까? 그때.

☎ 천호균 :

다 남겼지만 글쎄, 학교를 그 덕에 다녔고 데이트도 적당히 할 수 있었고

☎ 손석희 / 진행 :

성공한 사업가셨네요. 대학생 때부터. 아드님의 결혼식에 주례는 직접 보셨다면서요?

☎ 천호균 :

계획된 건 아니었고요. 그 당시 어느 화가한테 저희 아들이 주례를 부탁했는데 갑자기 전 날 화가의 아버님이 응급하다고 해가지고 그 전날 주례를 도저히 어느 분한테 부탁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미안해서. 가만히 궁리하다가 아버지가 해도 되지 않냐 아들한테 물어봤더니 좋은 생각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의기투합해 가지고 제가 주례를 섰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뭐라고 하셨습니까, 주례사는?

☎ 천호균 :

지금 기억나는 건 저희 며느리가 아버님이 일찍 여의였는데 며느리한테 이제 부터 내가 니 아버지역할을 잘 하겠다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있고 저희 큰애한테는 여태까지 네 맘껏 하고 살았으니 이제부터는 네 마누라 말만 듣고 살아라, 그런 주례를 했는데 약속을 잘 지키는지 제가 확인은 잘 못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큰 아드님은 혹시 어떤 일을 하는지.

☎ 천호균 :

지금 쌈지농부 대표로 있고요.

☎ 손석희 / 진행 :

같이 일하시는 군요.

☎ 천호균 :

나름대로 굉장히 원래 예술을 하려던 친구인데 농사가 예술이다 라는 실감을 제대로 하는 것 같아서 하기 싫은 일보다는 예술 같은 일을 하는 게 잘됐다 하고,

☎ 손석희 / 진행 :

본인이 그걸 좋아하는 군요. 좋아하니까 또 하겠죠.

☎ 천호균 :

예.

☎ 손석희 / 진행 :

작년부터 여신 유통매장 ‘농부로부터’, 흙살림하고 손을 잡았다고 제가 말씀드렸는데 흙살림은 다른 단체입니까?

☎ 천호균 :

흙살림은 거의 우리나라 유기농의 역사와 비슷하고 거기 이태근 회장님이 충북괴산에 농민으로 운동하러 갔다가 거기 눌러 앉아서 일반 관행농사를 유기농으로 바꾸기 위해서 미생물을 개발해서 좋은 흙을 만드는 그 일을 계속했죠. 그리고 거의 그 회사는 과학자들이 많이 있고

☎ 손석희 / 진행 :

과학자들이.

☎ 천호균 :

과학자들이, EM을 연구하는 그런 과학자들이 많고 마침 저희 쌈지농부는 디자이너들이 많아서 과학과 디자인이 만나는 절묘한 인연, 그렇게 해서 둘이 지금 ‘농부로부터’ 라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그게 그 두 분야가 만나면 어떤 결과가 나오던가요?

☎ 천호균 :

과학과 디자인이 만나면 글쎄요. 별로 시빗거리가 없을 것 같아요. 디자인이 너무 감각적이라면 과학은 치밀하잖아요. 치밀과 감각이 서로 보완해 주니까 자신 있게 하고 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농사와 기업에 대한 대담집을 작년에 내셨더군요. 제목이 역시 ‘농부로부터’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잠깐 보니까 화두로 삼고 계신 것이 사랑이라고 하셔서, 물론 뭐 찾아보면 다 맥이 닿는 얘기이긴 합니다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원수를 사랑하라, 이렇게 화두를 삼고 계시다고 해서 이건 특별히 내세우신 이유가 있습니까?

☎ 천호균 :

제가 늘 가장 세상에서 창의적인 이야기가 사랑이고 사랑의 절대 극복은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것까지,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다 보면 굉장한 지혜가 생기고 사람이 똑똑해지니까 굉장한 그 큰 찬스가 올 때 그것을 움켜잡는 이런 걸 하려면 사업을 아니면 예술을 모든 분야에서 사랑을 하라 라는 이런 종교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해왔는데 그리고 제가 실제로 그런 극복을 어려움을 극복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지금은 제가 그런 여러 가지 시련을 겪으니까 내가 사랑이 부족해서 이런 시련을 겪는구나 좀 더 사랑해야지 하고 살고 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한 40여 분 말씀을 나눴는데요. 처음에 들어오실 때 저의 천 선생님에 대한 인상과 지금이 많이 바뀌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머리도 기르시고 복장도 굉장히 자연스러우셔서 오늘 인터뷰가 굉장히 뭐랄까, 자유분방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느낌은 말씀 하나하나를 굉장히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하시고 고르면서 하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천호균 :

그래요,

☎ 손석희 / 진행 :

예. 왜 보이시는 면과 말씀하시는 면이 다른가는 오늘 탐구를 못할 것 같고요. 과제로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그래도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말씀 참 많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천호균 :

고맙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다시 헤이리로 돌아가시겠네요.

☎ 천호균 :

예.

☎ 손석희 / 진행 :

‘농부로부터’나 아니면 ‘맛있게 먹겠습니다’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저도 한 번,

☎ 천호균 :

‘맛있게 먹겠습니다’는 꼭 한번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천호균 :

기다리겠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예. (웃음) 쌈지농부의 천호균 대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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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쌈지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