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의 경제

패션사업가서 농사기업인 변신한 천호균 ‘쌈지농부’ 대표



쌈지농부의 천호균 대표가 베트남에서 구입한 모자를 쓰고 빙그레 웃음을 짓고 있다. 그는 “지난달 베트남 공정무역을 다녀온 뒤로 베트남 모자를 쓰고 다닌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속죄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파주/김현대 선임기자


“농사의 사회적 가치를 꾸준히 이야기하고 보여주자는 것이 우리 비즈니스모델의 시작입니다. 농사의 숨은 가치를 마케팅과 디자인 소스로 활용하죠. 내년이면 손익분기점에 오르지 않을까, 기대합니다만….”


1990년대의 패션 아이콘에서 ‘농사 기업인’으로 변신한 천호균(64) 쌈지농부 대표가 지속가능한 사회적기업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2009년 패션브랜드 ‘쌈지’를 매각하고 2010년 서울형 예비사회적기업인 쌈지농부를 설립하면서 ‘농사 사업의 미학’에 도전했다.


“쌈지농부 차별화의 포인트는 ‘친환경’, ‘생긴대로’, ‘토종’입니다. 삐뚤삐뚤 못생긴 (상품성 없는) 농산물에 담겨 있는 생명의 가치를 새롭게 하자는 거죠. 사회적기업 흙살림이 생산한 토종 곡식의 가치도 적극 알리고 있습니다. 농부들과, 또 고객들과 늘 그런 이야기로 소통합니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마을의 쌈지농부는 농사를 소재로 한 디자인 컨설팅 사업에 이어 지난해부터 ‘농부로부터’라는 유기농 매장 사업을 시작했다. ‘논밭예술학교’로 이름붙인 제법 규모있는 공간에서는 논갤러리와 밭갤러리라는 전시장과 자연요리교실 및 생태형 숙박시설 등을 운영한다.


“농부들의 상품 포장을 디자인해 주고, 농산물로 대신 받는 물물교환을 자주 해요. 촌스런 디자인이 우리의 콘셉트이고요. 농부들한테서 받은 농산물은 ‘농부로부터’ 매장에서 판매합니다. 신뢰가 쌓이면서 디자인 수주와 유기농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쌈지농부의 매출은 첫해 5억에서 지난해 10억, 올해 20억으로, 상승곡선을 이어가고 있다.


-매출 20억이면 흑자가 납니까?

“적자지요. 그래도 마음은 편안합니다. 아직은 투자라고 생각해요. 쌈지농부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잖아요. 올 9월에는 논밭예술학교에서 ‘슬로우 아트’라는 주제로 2주 동안 병아리를 키우고 예쁜 닭집을 지어 노인들한테 분양해주는 전시회를 했어요. 자연요리를 공부하고 직접 만드는 문승희 선생님의 강습도 매주 열고 있고요. 그런 분들과 함께하면서 우리는 소중한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친환경’ ‘생긴대로’ ‘토종’

차별화된 유기농 매장 운영

농산품 포장 디자인해주고

돈 대신 농산물로 받기도

논밭갤러리·자연요리교실에

생태형 숙박시설도 만들어

손익분기점 정도 이익이 목표

“올바르게 해야 예술처럼 지속”


-그래도 계속 손해가 나면 사업 유지가 어렵잖아요?

“내년쯤은 우리가 목표로 하는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저는 손해 안보고 돈도 벌지 않는, 그렇지만 오래 지속가능한 기업을 꾸리는 것을 쌈지농부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아직은 우리 농부들이 가난하고 유기농산물을 다 같이 먹을 수 있어야 하니까, 현실적으로도 돈을 벌기가 어렵습니다.”


-손익분기점이 목표인 기업?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돈을 더 벌자고 끝없이 경쟁지향적으로 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까요? 교육과 문화로 인해 우리가 그렇게 습관화됐던 것 아닐까요? 저도 한창 사업을 벌일 때는 그런 환경에 아주 익숙해 있었지요. 지금은 꼭 그것만이 기업의 목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운영비를 회사에서 감당하고 손익분기점이 계속 이어지는 그런 경영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의 본모습 아닐까요. 앞으로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기업가들이 많이 나올 겁니다.”


천 대표는 사회적기업인 쌈지농부 이외에 100억대 매출의 어린농부라는 영리 기업도 운영하고 있다. 헤이리마을 등 6곳에서 ‘딸기가 좋아’라는 인기 어린이테마파크를 운영하고, 친환경 소재의 잡화를 판매하는 서울 홍대 입구의 ‘리틀파머스’ 매장을 소유한 흑자 기업이다. 농사와 생태의 가치는 어린농부의 사업에도 속속들이 녹아들어 있다.


“‘딸기가 좋아’에서는 아이들이 똥과 흙을 소재로 우리 옛것의 놀이를 즐깁니다. 자기보다 약한 동물과 식물을 아끼려는 아이들의 심성을 담을 수 있도록 애썼어요. ‘리틀파머스’에서는 새터민들의 사회적기업인 ‘고마운사람’에서 손노동으로 생산하고, 신문지와 폐가죽 폐타이어를 활용한 구두와 가방을 판매해요.”


천 대표는 내년부터 어린농부의 사업 일부를 쌈지농부로 넘기는 방안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헤이리마을에서 유기농 밥집과 공정무역 커피점 등을 운영하는 ‘지렁이다’ 사업과 다양한 손공예 체험을 할 수 있는 ‘작가공방’의 가게임대사업을 대상으로 생각한다.


“저는 기업가의 체질이 굳어있지요. 쌈지농부 사업이 내년에도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혼자 굴러갈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울 겁니다. 사재를 털든지…, 아니면 어린농부의 흑자 사업을 조정하든지….”


-2009년 쌈지 사업을 접을 때부터, 지금과 같은 사회적기업을 생각했나요?

“지금처럼 순수하지는 않았어요. 예전에 쌈지를 운영할 때도 ‘나무를 가꾸는 속도로 아름다움을 가꾸자, 그런 마음으로 예술사업을 하자’는 생각은 했지만요. 농사를 가까이 하면서 좋은 생각과 착한 마음에서 창의력이 나온다는 진실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60대의 사회적기업가는 ‘신념’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예술이 지속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아름다움과 올바른 사회적 가치를 사람들과 나누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올바름을 끌어안는 기업은 지속가능합니다. 저의 신념입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원본출처: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652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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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v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