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0일



현재, 레지던시의 내 작업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입주 첫날은 길건너의 저 파란지붕의 집에가서 호박송편을 빚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기에..신라면에 양파 반개를 넣어서 쏜살같이 끓여먹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이곳의 취사화력은 가정용이 아니라 업소용의 그것이어서
확하고 화력을 올려버리면 마치 그 불길이 천장까지 올라갈듯한 그런것인데
그덕에 음식들이 순식간에 조리되는 아주 큰 장점이 있다.
다른 작가들이 바쁜와중에 나는 그렇게 번개처럼 라면을 삶아 먹고, 찬물에
입을 헹구고는 가방을 등에메고, 주머니안의 돈을 확인하고..
길을 나섰다.
이곳에 입주한 이후로 몇차례 밖에 나가기는 하였지만 죄다 일때문에 차로 함께
한 이동이어서 이 동네의 지리나, 생긴 모양이나 등등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으니
한번 그렇게 나가서 정탐내지는 염탐을 할 요량으로 말이다.

동네방향으로 십오분여를 걷다가...띄엄띄엄한 농가들과 밭들을 보다가 반대편으로 다시
길을 꺽었다.
그곳으로 주욱 가면 삼거리 슈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이 "건강치 못한 문명의 달콤함"을 돈주고 사들고 올 마음으로.
급하게 꺽인 고갯길이 보여 그것을 돌아넘었다.
그러하니 까마득..하게 노라니 익은 벼들로 이어지는 끝없는 논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꼬불하며 늘어진 길이 보일 따름이지 그 끝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느린걸음으로 삼십여분을 걸었다.
그렇게 걸으니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마냥 삼거리가 나오고 허물어질것 같은
지붕아래의 "슈퍼"라는 글귀가 보인다.
허겁지겁 길을 건너 슈퍼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곧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 한분이 나오신다.

"초코렛 없나요?"

"어...그러니까보자...초코렛이..없는데.."

이빨빠진듯 허전하기만 한 선반위에는 새우깡 몇봉지와, 초코파이 두서너상자,
그런것들이 조금 있을 따름이고, 음료수병들에는 먼지가 뽀얗다.
마음속으로..

'계란 한판 사고, 너무 힘들었으니까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을까 말..까..?'

하며 행복한 고민을 하였던것이 여지없이 와르르...무너져 내렸다.
까만봉다리안에 쥬시후레쉬 껌 두통과, 초코파이 한상자, 빠다 코코넛 두개, 그리고..아무도
몰래 나 혼자 숨겨놓고 먹을 짱구 한봉지를 사들고는 다시 삼십분이 걸려 레지던시로 돌아왔다.

다른 작가들의 방문을 두드려 초코파이 두개에...빠다코코넛 조금씩을 나눠주며

"문명의 달콤함 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한 작가분이...계산서를 적으면 공동지출에서 정산하겠다..하시기에

"이것은 저의 선물입니다."

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닭살스런 인사를 남기고 나왔다.
평소의 나는 초코파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차가운 우유와 함께 초코파이 하나를
맛나게 먹었다.

진심으로..맛있었다.

'Archiv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독에 잠겼다.  (0) 2009.12.05
술을 마셨다.  (0) 2009.12.05
이동네에는 말린 표고가 없다.  (0) 2009.12.05
삼거리 슈퍼에 다녀오다  (0) 2009.12.05
건강한 하루하루  (0) 2009.12.05
순서없는 와야일기 01_ 예림이네 토종꿀  (0) 2009.11.09
내촌 너브네 단호박 축제  (0) 2009.11.03
내촌 너브네 단호박 축제 (2009.10.17-18)  (0) 2009.11.03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